선반 12번 김한별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추운 계절에 들어와서 또 한 번 추위를 맞으니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 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1년 전, 그리고 열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아니 이곳에서 오는 게 사실상 결정되었을 때부터 나는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내가 결국 올해는 성공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깊은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물론 이런 감정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이기는 것을 유독 힘들어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그럴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때 나 자신을 참 많이 미워했었다. 여기서 지내는 초반에 그런 마음이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당연히 공부에도 효율이 떨어져다. 항상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공부가 안 되면 또 마음이 불안정했다.

그러다가 작년의 나와 너무도 닮아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정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년보다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꼭 해내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나에게 또 다시 진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무너지면 도저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나 자신을, 모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나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정말 나 자신과 계속해서 싸웠다.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계속 두지 않았다. 무너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노력하면서 아제는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안 했을 뿐이었다.

‘내가 마음이 흔들리지만 않으면 할 텐데.’ 이런 어리석은 생각으로 제 자리에서 머뭇대고 있기만 하였다. 내 마음을 흔드는 것도 나고 그 흔들림을 멈출 수 있고 멈춰야 하는 것도 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과정을 겪고 나니 이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더 힘겨웠던 것 같다.

실패라는 것이 아프기는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넘어졌다면 얼른 다시 일어나고 물러났다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넘어짐 자리에서 계속 넘어져 있고 밀려난 채로 계속 있는 것이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고 나아가서 잡은 기회를 또 다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 자신을 너무 미워하고 책망하느라 시간을 흘러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저앉았다고 잘 못한 것은 아니다.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마음 편히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10개월이 지나 다시 일어난 사람이다. 이곳에서 보낸 10개월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더 먼 훗날에도 시련이 찾아올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이겨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내가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실패했던 나를 잡아주고 끊임없이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